인도의 대중교통 Rickshaw를 끄는 사람들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타지마할, 신비한 수행자들의 나라, 전통적인 카스트 제도 등 인도 특유의 전통문화의 매력에 이끌려 최근 세계 각국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인도를 찾고 있다. 이들이 인도의 도로에 첫 발걸음을 내디 면 이들의 눈을 사로 잡는 특이한 교통수단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릭샤’ 이다. ‘릭샤’란 일본의 력거(力車)에서 유래한 말로 자전거를 개조해서 뒤에 승객이 앉을 수 있게 개조한 인도 등 남아시아 국가(파키스탄,네팔,방글라데시)에서만 볼 수 있는 교통 수단이다. ‘릭샤’는 순전히 사람을 힘을 빌어 이동하는 수송수단으로 뒷좌석에 승객이 타면 릭샤 드라이버는 승객의 목적지 까지 페달을 밟으며 움직인다. 요금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릭샤 드라이버와의 흥정에 의해 결정되며 약 1km당 5-10루피(약100-230원) 정도이다.
1945년 인도 북부 우따르 쁘라데쉬주의 고락뿌르에서 처음 나타난 사이클릭샤는 점점 그 수가 급증하여 이제 이것들을 인도 전역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끄는 것이 구시대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생각되지만 다른 일자리를 구할 능력도 특별한 기술도 없는 릭샤 드라이버로선 릭샤를 끄는 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이며 시내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체계가 잘 발달하지 않은 인도에서는 효율적인 단거리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식 되고 있다.
힌두교도 들의 성스러운 강 갠지스를 끼고있는 우따르 쁘라데시주의 바라나시는 릭샤의 도시라 불릴 만큼 다른 어느 도시보다 릭샤가 많다. 바라나시의 주요도로에선 자동차와 오토바이, 릭샤들이 뒤엉킨 혼잡함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공식적으로 30,000여 명이 릭샤 드라이버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50세 이상의 사람들에겐 라이센스가 발급되지 않으며 이도 1년에 한번씩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많은 드라이버들이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릭샤를 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라나시의 전통 수공예 산업인 sharee산업이 전기 배틀기의 도입, 값싼 중국제품 들이 대거 수입되면서 쇠퇴해가고 있어 일감을 구하기 힘든 위버들이 릭샤로 전환을 하고 있다. 위버 일이나 일용직 노동의 경우 일거리가 없을 때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지만 릭샤는 자기가 일하고 싶을 땐 언제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위버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릭샤로 직업을 바꾸고 있다.
릭샤 드라이버들의 하루는 아침 일찍 릭샤를 대여해주는 곳에서 릭샤를 빌리면서 시작한다. 자기 소유의 릭샤를 가지고 있는 릭샤 드라이버들도 있지만 릭샤 한대 가격이 7000-8000RS(16만원~19만원)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릭샤 드라이버들은 하루하루 릭샤를 대여하고 하룻동안 번 돈에서 25~30루피(약580-700원)를 릭샤 대여료로 지불한다. 부지런한 릭샤 드라이버들은 하루에 150루피(약3500원) 이상도 벌기도 하지만 이도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경우다. 운이 나빠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하면 하루 중 번 돈의 반을 릭샤 대여료로 지불해야 할 때도 있다.
이들은 주로 관광객들이 많은 갠지스 강 주변이나 역 주변을 배회하며 승객을 찾는다. 처음 인도를 찾는 여행자들에겐 이 거대한 세발자전거 같은 릭샤에 신기해 하고 호기심을 느끼지만 실제 이들에게 드리워진 삶은 순탄치 않다. 릭샤 드라이버들 대부분은 인도 카스트의 하위계급조차에도 속해 있지 않은 달리트들(불가촉천민) 이다.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며 특별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인도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은 같은 달리트 구성원들끼리 군락을 이뤄 함께 모여 살며 주로 재활용 될만한 쓰레기를 주워 팔거나, 상층카스트의 집안일, 트롤리(자전거를 개조한 수레)로 사용하여 짐을 나르는 일 등 인도사회에서 힘들거나 어렵고 더러운 각종 일을 도맡아 하며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하루하루 번 돈으로 겨우 끼니를 잇는 이들에겐 안락한 주거공간이란 상상할 수가 없다. 대부분 조그마한 방 한두 칸에서 6-7명의 대식구가 모여 살며 더 열악한 경우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진흙으로 지어진 집에서 비 때문에 혹여 무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살기도 한다. 실제로 거리에선 젊은 릭샤 드라이버들 뿐 아니라 60세 심지어 70세가 넘는 릭샤 드라이버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겐 하루종일 페달을 밟으며 힘을 써야 하는 이일이 상당히 고되지만 많은 이들이 집을 짓거나 자식들이 결혼할 때 적지 않은 돈을 빌리기 때문에 이를 갚기 위해선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해야 한다. 이들의 소망은 가난에 찌든 삶에서 하루빨리 탈출하는 것 이지만 뿌리 박힌 카스트 제도의 사회 속에서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2007년 12월 9일 일요일
case 2
West bengal이나 Bihar 주에서 수많은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바라나시를 찾는다. 자신들의 고향에선 일자리를 구할수 없다는게 그들의 말이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바라나시에 거주하며 일거리를 찾는다. 이들 대부분은 달리트(불가촉천민)들이며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로 쓰레기를 주어서 고물상에 팔거나 트롤리나 릭샤를 끄는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바라나시 슬럼가 바과날라 마을의 입구에는 웨스트 벵갈에서 이주해온 8가족들이 비닐천막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 트롤리나, 릭샤를 끌고 있으며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바라나시 시내를 돌아다니며 재활용이 될만한 종이나 플라스틱등 주워 고물상에 팔고있다. 이들이 15년째 이곳에 거주하고 있지만 진흙으로 지어진 집조차 없이 땅을 빌려 그 위에 허름한 비닐천막으로 덮여진 집을 짓고 계속 살아왔다. 단순히 비닐로만 만들어져있으니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우며 특히 몬순기간에는 집안 곳곳에서 물이 샌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들처럼 군락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3년전에 웨스트벵갈에서 가족 전부를 데리고 바로나시로 온 asparali(30)씨도 릭샤를 끌며 생계를 유지하고있다. 그는 전기 기술이있어 이곳에서 일을 찾아보려 했으나 바라나시 시민증이 없는 이주민이라서 일을 찾기란 쉽지가 쉽지 않았다. 무슬림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무스림 축제기간인 이드 기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만 버는돈이 생활비만으로도 빠듯한 아스파랄리 가족들에겐 기차비용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올해는 그냥 남기로했다. 이들처럼 가족전체가 전부 이주해오는 경우도 있지만 고향에 가족을 홀로둔채 떠나온 이 들도 상당히 많다. 이들도 이들끼리 모여 방을 하나구해 여럿이 모여 살며 주로 릭샤일을 한다. 이들이 릭샤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용직 노동보다 더 쉽고 기술없이도 쉽게 일할수 있고 자기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충분한 돈을 벌수도 잇기 때문이다. 비하르에서 이주해온 모하메드 카삼(40)세 씨는 하루에 200루피 가량을 번다고 한다. 다른 릭샤드라이버들이 평균 70-80루피 버는것에 비하면 많은 액수지만 이 돈을 벌기 위해서 아침일찍부터 저녘늦게까지 하루종일 릭샤를 몰아야 한다고 한다. 고향에서 자신의 번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이주민들의 소망은 돈을 많이 벌어 하루빨리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바라나시에 거주하며 일거리를 찾는다. 이들 대부분은 달리트(불가촉천민)들이며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로 쓰레기를 주어서 고물상에 팔거나 트롤리나 릭샤를 끄는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바라나시 슬럼가 바과날라 마을의 입구에는 웨스트 벵갈에서 이주해온 8가족들이 비닐천막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 트롤리나, 릭샤를 끌고 있으며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바라나시 시내를 돌아다니며 재활용이 될만한 종이나 플라스틱등 주워 고물상에 팔고있다. 이들이 15년째 이곳에 거주하고 있지만 진흙으로 지어진 집조차 없이 땅을 빌려 그 위에 허름한 비닐천막으로 덮여진 집을 짓고 계속 살아왔다. 단순히 비닐로만 만들어져있으니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우며 특히 몬순기간에는 집안 곳곳에서 물이 샌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들처럼 군락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3년전에 웨스트벵갈에서 가족 전부를 데리고 바로나시로 온 asparali(30)씨도 릭샤를 끌며 생계를 유지하고있다. 그는 전기 기술이있어 이곳에서 일을 찾아보려 했으나 바라나시 시민증이 없는 이주민이라서 일을 찾기란 쉽지가 쉽지 않았다. 무슬림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무스림 축제기간인 이드 기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만 버는돈이 생활비만으로도 빠듯한 아스파랄리 가족들에겐 기차비용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올해는 그냥 남기로했다. 이들처럼 가족전체가 전부 이주해오는 경우도 있지만 고향에 가족을 홀로둔채 떠나온 이 들도 상당히 많다. 이들도 이들끼리 모여 방을 하나구해 여럿이 모여 살며 주로 릭샤일을 한다. 이들이 릭샤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용직 노동보다 더 쉽고 기술없이도 쉽게 일할수 있고 자기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충분한 돈을 벌수도 잇기 때문이다. 비하르에서 이주해온 모하메드 카삼(40)세 씨는 하루에 200루피 가량을 번다고 한다. 다른 릭샤드라이버들이 평균 70-80루피 버는것에 비하면 많은 액수지만 이 돈을 벌기 위해서 아침일찍부터 저녘늦게까지 하루종일 릭샤를 몰아야 한다고 한다. 고향에서 자신의 번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이주민들의 소망은 돈을 많이 벌어 하루빨리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07년 12월 6일 목요일
case 1

바라나시 반디뿌르 하리잔 달리트 공동체 마을(달리트)에 거주하는 Swatinal harijan(75)씨와 그의 아들____(50)씨는 자신들이 소유한 한대의 릭샤를 번갈아가며 운행하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다른 릭샤 드라이버들이 하루에 70-80RS 를 버는데 비해 이들은 하루에 고작 30-40RS를 벌뿐이다. Swatinal씨는 고령으로 인해 호흡기관에 병이 있어 하루에 4시간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 몇 년 전에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그에게 수술을 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에게 그럴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의 아들___씨는 작년 5월에 당했던 스쿠터 사고로 인해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다쳐 릭샤를 끄는 것이 쉽지 않다. 그는 당시 반디뿌르 시장을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스쿠터 한대가 그를 덥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즉시 그 운전자는 현장을 떠났다. 때문에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 보상도 받지 못하였고 절절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밴드와 붕대만 감은채 지금껏 릭샤를 끌고있다.
Swatinal씨와 ____씨, 그리고 그의 세 세 아이들인 이들 가족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좁디 좁은 집에서 살고있다. 두달전까진 ___씨의 큰아들 가족내외와 함께 살았으나 지난 몬순기간의 폭우로 인해 큰아들 가족내외가 살았던 진흙이로 된 집이 무너져 버려 이들은
분가한 상태이다. Swatinal 씨는 하루빨리 이 무너진 집을 다시 짓고 싶지만 아직까지도 손자가
결혼할 때 빌린돈의 일부가 남은 그에겐 이 집을 고칠돈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러한 열학한 상황속에서 그들이 하루에 버는 40루피로는 이들 식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하지가 않다. 게다가 한창 학교에서 뛰어다녀야 할 나이인 ___씨의 세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학교를 전혀 다녀본 적이 없다. 그는 두달전 자신들의 이런 비참한 사정을 바라나시 DM에게 도움을 요청해 곧 담당 공무원이 확인하러 방문하고 조취가 취해질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까지도 어느누구도 그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스쿠터 한대가 그를 덥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즉시 그 운전자는 현장을 떠났다. 때문에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 보상도 받지 못하였고 절절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밴드와 붕대만 감은채 지금껏 릭샤를 끌고있다.
Swatinal씨와 ____씨, 그리고 그의 세 세 아이들인 이들 가족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좁디 좁은 집에서 살고있다. 두달전까진 ___씨의 큰아들 가족내외와 함께 살았으나 지난 몬순기간의 폭우로 인해 큰아들 가족내외가 살았던 진흙이로 된 집이 무너져 버려 이들은
결혼할 때 빌린돈의 일부가 남은 그에겐 이 집을 고칠돈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러한 열학한 상황속에서 그들이 하루에 버는 40루피로는 이들 식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하지가 않다. 게다가 한창 학교에서 뛰어다녀야 할 나이인 ___씨의 세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학교를 전혀 다녀본 적이 없다. 그는 두달전 자신들의 이런 비참한 사정을 바라나시 DM에게 도움을 요청해 곧 담당 공무원이 확인하러 방문하고 조취가 취해질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까지도 어느누구도 그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2007년 10월 10일 수요일
22년간 질병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느 어느 직공가족
인도의 UP주 바라나시 Lohta마을에선 많은 주민들이 직조일을 하며 그들의 생계를 이어나가고있다. 하지만 전기 배틀기가 도입되고 이들을 대체할만한 중국의 값싼 제품이 대거 수입되면서부터 직공산업은 점점 쇠퇴해가고 있으며 그들의 일거리 또한 점점줄어들어 그들의 생계가 더욱더 악화되고있다.
이제 이일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주민들은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결핵감염으로 인해 고통받고있다. 이들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이들을 책임져야할 주정부는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사회에 만연한 공무원들의 부패는 공공건강정책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기에 이들을 더욱더 힘들게 하고있다.
14살때부터 직조일을 시작한 마무달 하산씨는(36) 지난 22년째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다. 직조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갑자기 고열과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내자 병원을 찾아간 그는 결핵감염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올해 들어 증세가 더 심각해졌지만 그는 엑스레이를 찍어볼수도 제대로된 치료조차 받을수가 없다. 그는 병세 때문에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에 오직 2~ 3일만 일을하고 하루에 50루(약1150원)을 번다. 그의 아내 압사나씨(30) 또한 10살된 아들 사디크와 사리에 수를 놓는일을하는데 보통 3일 작업을 하면 40루피(약1000원)를 받을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입으론 하루하루 끼니를 있는것 조차 어렵고 제대로 된 진찰한번 받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이러한 상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있다. 그들은 정부 복지정책 뿌리깊은부패의 희생자들이라고 볼수있다.
마무달씨는 정부에 지정한 빈곤한계선 아래에 있다고 확인된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BPL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장가격보다 싼값에 곡식을 판매하는 정부의식량배급소PDS(public distribution shop)를 이용할수가 없다. 마무달씨는 BPL카드를 받을수 있도록 마을 이장에게 요청을 했지만 이장으은 BPL카드를 지금은 이용할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거절했다 . BPL카드의 제한적분배와, 5년동안 지정된 유효기간등의 미흡한 정책운영때문에 무마들 같은 시급하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복지정책 혜택을 받는 것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 9월 6일 마무달씨는 진통중인 아내를 데리고 인근의 보건소를 찾았지만 병원에선 보건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salined drips 주사를 맞았을뿐 그 누구도 그녀를 돌봐주지 않았다. 아기의 분만이 가까워져 그녀는 지속적인 간호가 필요했지만 저녘에는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그누구도 그녀를 돌봐주지 않았다. 마무달씨는 다른 조취를 취할 방도가 없었기에 어떠한 치료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후에 압사나는 여자 아이를 낳았는데 태어난지 6시간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지난 5월 마무달씨를 포함한 50명의 위버들은 ICICI은행의 후원을으로 진행되는 의료보험 정책에 보건증을 받을수 있도록 신청한 적이있다. 마무달씨가 은행의 사무실에 찾아가 보건증의 발급에 대해 문의를 했지만 이들은 모든 서류가 갖추어 져야만이 발급될수 있다는 말만 할뿐이었다. 보건증을 신청한 50명중에 발급받은 이들은 오직 4명뿐이었다.
마무달씨는 더이상 어떻게 자신의 가족들을 돌봐야할지 막막할 뿐이다.
이제 이일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주민들은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결핵감염으로 인해 고통받고있다. 이들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이들을 책임져야할 주정부는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사회에 만연한 공무원들의 부패는 공공건강정책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기에 이들을 더욱더 힘들게 하고있다.
14살때부터 직조일을 시작한 마무달 하산씨는(36) 지난 22년째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다. 직조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갑자기 고열과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내자 병원을 찾아간 그는 결핵감염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올해 들어 증세가 더 심각해졌지만 그는 엑스레이를 찍어볼수도 제대로된 치료조차 받을수가 없다. 그는 병세 때문에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에 오직 2~ 3일만 일을하고 하루에 50루(약1150원)을 번다. 그의 아내 압사나씨(30) 또한 10살된 아들 사디크와 사리에 수를 놓는일을하는데 보통 3일 작업을 하면 40루피(약1000원)를 받을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입으론 하루하루 끼니를 있는것 조차 어렵고 제대로 된 진찰한번 받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이러한 상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있다. 그들은 정부 복지정책 뿌리깊은부패의 희생자들이라고 볼수있다.
마무달씨는 정부에 지정한 빈곤한계선 아래에 있다고 확인된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BPL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장가격보다 싼값에 곡식을 판매하는 정부의식량배급소PDS(public distribution shop)를 이용할수가 없다. 마무달씨는 BPL카드를 받을수 있도록 마을 이장에게 요청을 했지만 이장으은 BPL카드를 지금은 이용할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거절했다 . BPL카드의 제한적분배와, 5년동안 지정된 유효기간등의 미흡한 정책운영때문에 무마들 같은 시급하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복지정책 혜택을 받는 것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 9월 6일 마무달씨는 진통중인 아내를 데리고 인근의 보건소를 찾았지만 병원에선 보건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salined drips 주사를 맞았을뿐 그 누구도 그녀를 돌봐주지 않았다. 아기의 분만이 가까워져 그녀는 지속적인 간호가 필요했지만 저녘에는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그누구도 그녀를 돌봐주지 않았다. 마무달씨는 다른 조취를 취할 방도가 없었기에 어떠한 치료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후에 압사나는 여자 아이를 낳았는데 태어난지 6시간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지난 5월 마무달씨를 포함한 50명의 위버들은 ICICI은행의 후원을으로 진행되는 의료보험 정책에 보건증을 받을수 있도록 신청한 적이있다. 마무달씨가 은행의 사무실에 찾아가 보건증의 발급에 대해 문의를 했지만 이들은 모든 서류가 갖추어 져야만이 발급될수 있다는 말만 할뿐이었다. 보건증을 신청한 50명중에 발급받은 이들은 오직 4명뿐이었다.
마무달씨는 더이상 어떻게 자신의 가족들을 돌봐야할지 막막할 뿐이다.
2007년 10월 5일 금요일
역대 광주인권권상 수상자 남북공동선언 관련 성명
우리 광주인권상 수상자들은 2007년 10월 4일 남북한의 지도자가 공동으로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발전에 큰 전환점을 이룰 것이라는 계기로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환영하는 바이다.
강대국에 의한 분단의 상처와 전쟁으로 인한 반목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화해 그리고 번영으로 가고자하는 남북한 국민들의 노력은 우리 아시아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광주인권상 수상자들은 특히 선언문의 내용 중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에 주목하여, 상기 회의를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인권의 상징인 광주에서 개최하기를 제안한다.
남북의 평화발전과 동아시아의 협력과 평화의 상징으로 희망의 도시 광주가 더욱 더 큰 노력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2007. 10. 4
광주인권상 수상자
사나나 구스마오, 바실페르난도, 단데니야 자얀티, 와르다하피즈, 말라라이조야, 앙카나 닐라파이지트, 레닌 라흐바니쉬, 이롬 샤르밀라.
출처-5.18 기념재단-
버마 군사정권 화형식
PVCHR등 인도 인권단체 " 버마 군사독재정권 화형식 "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탄생일인
10월 2일 인도 우타다쁘라데쉬 주 바라나시의 중심가에서 PVCHR(People Vigilance Committee on Human Right), People' Watch, V.O.P 등 바라나시 인권단체들은 버마 군사독재정권을 상징하는 인형을 불태우며 버마의 민족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석방과 버마 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평화적 시위에 무자비한 탄압을 중단하고 쿠데타 이후 40여 년간 진행되어온 군사독재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지난달 버마 군부정권이 휘발유와 디젤, 천연가스등을 예고 없이 대폭 올린 것에 항의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군정의 폭압적인 정치에 저항하는 반정부, 민주화 요구 시위로 확산되었다. 승려들과 민주화 단체들이 이끄는 이번 시위는 수 주째 계속되어 수많은 승려와, 학생들, 시민들이 격렬히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이들에게 돌아온 건 경찰의 무자비한 총칼뿐이었다. 이번 시위 진압과정에서 200여명 이상이 체포 구금되고 100여명이 부상당하고 최소한 5명이 숨지는 유혈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날 광주 5․18기념재단 으로부터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PVCHR의 레닌 라흐바니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정부가 버마사태에 대해 즉각적인 개입과 강력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며 평화를 사랑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버마의 인권운동가들과 시민들에 대한 무력진압을 당장 중단하고 하루 빨리 군사정권이 퇴진하여 버마에 민주화와 평화가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탄생일인
10월 2일 인도 우타다쁘라데쉬 주 바라나시의 중심가에서 PVCHR(People Vigilance Committee on Human Right), People' Watch, V.O.P 등 바라나시 인권단체들은 버마 군사독재정권을 상징하는 인형을 불태우며 버마의 민족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석방과 버마 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평화적 시위에 무자비한 탄압을 중단하고 쿠데타 이후 40여 년간 진행되어온 군사독재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지난달 버마 군부정권이 휘발유와 디젤, 천연가스등을 예고 없이 대폭 올린 것에 항의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군정의 폭압적인 정치에 저항하는 반정부, 민주화 요구 시위로 확산되었다. 승려들과 민주화 단체들이 이끄는 이번 시위는 수 주째 계속되어 수많은 승려와, 학생들, 시민들이 격렬히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이들에게 돌아온 건 경찰의 무자비한 총칼뿐이었다. 이번 시위 진압과정에서 200여명 이상이 체포 구금되고 100여명이 부상당하고 최소한 5명이 숨지는 유혈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날 광주 5․18기념재단 으로부터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PVCHR의 레닌 라흐바니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정부가 버마사태에 대해 즉각적인 개입과 강력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며 평화를 사랑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버마의 인권운동가들과 시민들에 대한 무력진압을 당장 중단하고 하루 빨리 군사정권이 퇴진하여 버마에 민주화와 평화가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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